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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역사 123

일본 침략전 불국사의 모습

일본 침략전 국보급의 문화재가 있는 불국사의 허술한 모습이다. 조선은 수백년간 잠을 자고 있고 내부 부정부패와 사회개혁없이 구한말에 이르러 국가라 할수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국보급 문화재는 관심도 가질 여력도 없는것을 보면 사회 전체가 저런 열등한 모습이었을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의 사례를 보면서 나라가 빼앗긴것에 대해서 비분강개만 하지말고 왜 저런일이 일어났는지?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반성을 하자. 역사란 반성을 하고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배우는것이지 화를 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것이 아니다. #아이비역사 #역사 #구한말조선 #불국사 #근대화 #통찰력

제갈량이 탄핵한 이엄 & 아들 정조에 의해 복권되지 못한 사도세자 케이스의 교훈은?

《 제갈량이 탄핵한 이엄 & 아들 정조에 의해 복권되지 못한 사도세자 케이스의 교훈은? 》 1. 유비는 촉한을 차지한 후 형주땅을 지키던 자신의 의형제인 관우의 죽음을 빌미로 손권의 동오를 대대적으로 공격했으나 동오의 입구인 이릉에서 크게 패한후 촉한의 최전선인 백마성에 자기의 유언을 남길 탁고대신 두명을 부르는데 한명은 제갈량이고 한명은 이엄을 부른다. 유비가 제갈량과 이엄을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촉한의 신진세력인 제갈량을 비롯한 형주이주세력과 기존 이엄을 필두로 한 촉한 토박이와의 화합도모 차원이 컸을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죽기전에 역사서에는 아예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오고 이릉전투에서 호위해주었던 "진도"를 이엄에게 붙여준다. 유비의 심복이었던 진도를 이엄에게 붙여준 이유는..

최고 천재들간 불륜 의혹 : 마리 퀴리 and 폴 랑주뱅

출처 : 페이스북 전집현 1. 불륜 의혹으로 노벨상을 놓칠 뻔 마리 퀴리(1867~1934)는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근데 두번째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당시 그녀는 프랑스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도 선정 취소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녀가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죽은 뒤 남편 제자이자 동료 과학자인 폴 랑주뱅 (1872~1946)과의 불륜 의혹때문이었다. 랑주뱅은 처가와 아내로부터 구박과 폭행을 당하는 등 가정생활이 힘들었고, 마리 퀴리 역시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빠져 있어 서로 위로해 주다 보니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노벨상을 거절하라는 편지를..

조선의 잔재를 청산하자 11 -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주체는 양반이다.

독립운동가의 절대다수는 조선의 귀족 출신이었다. ​일제로 인해 세상이 개벽했고 나의 이웃들은 더 이상 나의 아랫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나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상납이나 하던 아랫것들이 공부를 하고 사람취급을 받는 상황이 그들에겐 빡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일제가 신분제를 없애 버리니 양반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여도 틀린말일까? 자신들이 무시했던 노비들이 자신들과 동등해지니 빡칠만도 하다. 조선 500년은 양반 계급들의 나라였지, 그 밑의 하위계층의 나라가 아니었다. 하위계층들로서는 일제의 지배가 오히려 현실적으론 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지금 한국인들이 당연시하는 '민족주의'와 '민족의식' 같은 것들은 일제의 치하에서 비로소 느끼게 되었던 평등의식과 동..

유비의 마지막 전투인 이릉전투가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 유비의 마지막 전투인 이릉전투가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 촉한이 동오와 자존심 대결을 겨룬 이릉전투 삼국지 연의나 정사에서도 알다시피 유비는 동도의 대도독인 육손의 대활약으로 이릉전투에서 크게 대패하고 촉한의 최전방인 백제성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게 되었다. 유비가 백마성에서 숨을 거둘때 촉한의 두명의 거두인 제갈량과 이엄을 불러 탁고대신으로 삼아 자신의 사후를 도모하였고 자신의 후계자인 유선에 대한 안위를 당부하였다. 사실 이릉전투를 벌이기전에 촉의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었다. 특히나 승상인 제갈량과 오랜 충신인 조자운의 반대가 심했는데, 유비의 이릉 전투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도 강하여 천하의 제갈량도 유비의 의지를 꺽지 못하였으며 일개 관원이 이릉 전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바로 처형을 ..

조선의 잔재를 청산하자 10 - 1930년대의 영어 배우기 열풍

1930년대 조선인들의 영어 배우기 열풍. 총독부뿐 아니라 언론들도 앞다투어 '영어는 세계어', '영어를 무기 삼자'며 캠페인을 벌였고, 뻐쓰 차장들까지도 영어 학습 열풍에 동참했다고 한다. 심지어 보성학교 학생들은 영어 발음이 엉망인 일본인 선생을 바꿔 달라며 두 차례에 걸쳐 휴학까지 했다고 하는데 1930년대는 확실히 한국인들에게 유사 이래 처음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흔히들 이시기에는 조선어 말살 정책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이 조선어 신문도 잘나오고 있었고, 조선 학생들에게도 영어를 왕성하게 가리칠 정도로 교육의 질 또한 우수하였다. 덧) 식민-피식민 관계가 끝난 뒤에도 일본만큼 피식민지를 돕고 챙긴 식민 모국도 사실상 없다. 물품이나 현금 원조외에도 기술, 자..

조선의 잔재를 청산하자 09 - 반일 불매 운동의 허상

대한민국이 반일 불매 운동으로 소위 정신 승리, 자위 행위를 하고 있는동안, 유니클로는 세계적인 의류기업인 자라를 꺽고 의류업계 시총 1위에 올랐고 토요타는 5년만에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1위에 등극하였다. 케케묵은 감정으로 정신승리나 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계1류가 될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을 하자. #아이비역사 #아이비생각 #조선잔재청산 #반일불매 #유니클로 #토요타 #정신승리 #자위행위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배울점

《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배울점 》 베네치아 공화국이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17만의 인구가 공동체 정신으로 뭉쳐 국운을 열어 나갔다. 그래서 당대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생존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란 제목으로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를 쓴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 비결로 다음 3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개척정신이요 둘째가 공동체정신이다. 셋째는 국가경영을 마치 사기업처럼 경영한 비결이다. 국가경영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고 예산 낭비가 많아서 세계 각국이 국가경영에 어떻게 기업 경영방식을 도입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미 1,500여년 전에 국가경영에 기업 경영방식을 적용하여 효율을 높이고 국력을 높여 나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이 강조한..

존경은 나이에 무관하다.

제2차 포에니 전쟁때 카르타고의 전쟁영웅 한니발은 지중해를 넘어 로마를 공격하면 로마해군에게 격퇴당할게 뻔하여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프랑스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태리 반도에 이르게 되었다. 로마를 공격하기전에 한니발은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를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가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연구하였다. 그것은 페르시아가 대제국이라 하더라도 다민족 국가 연합인 페르시아의 유대가 그렇게 끈끈하지 않기때문에 하나의 페르시아 동맹국가에 힘의 우위를 보여 자연스레 페르시아 동맹의 해체를 유도 하였고 급기야 힘에 우위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편에 서게 되어 페르시아 대제국은 그렇게 마케도니아에 의해 점령당한것이다. 한니발도 삼니움, 갈리아족들과 같은 동맹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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