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의 마지막 전투인 이릉전투가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
촉한이 동오와 자존심 대결을 겨룬 이릉전투
삼국지 연의나 정사에서도 알다시피 유비는 동도의 대도독인 육손의 대활약으로 이릉전투에서 크게 대패하고 촉한의 최전방인 백제성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게 되었다.
유비가 백마성에서 숨을 거둘때 촉한의 두명의 거두인 제갈량과 이엄을 불러 탁고대신으로 삼아 자신의 사후를 도모하였고 자신의 후계자인 유선에 대한 안위를 당부하였다.
사실 이릉전투를 벌이기전에 촉의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었다. 특히나 승상인 제갈량과 오랜 충신인 조자운의 반대가 심했는데, 유비의 이릉 전투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도 강하여 천하의 제갈량도 유비의 의지를 꺽지 못하였으며 일개 관원이 이릉 전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바로 처형을 해버렸다.
오죽하면 제갈량이 유비와의 진한 브로맨스를 자아내었던 법정이 살아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한탄을 했을까?
제갈량과 조운이 동오에 대한 공격을 반대한 상식적인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일단 촉한의 대의 명분이 한을 부활시키는것이었고 그러기에 한황실을 찬탈한 주적 위나라를 멸하는 것인데 비록 동오가 촉한땅인 형주를 빼았고 관우를 죽였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복수는 한황실 부활에 비해 작은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오나라와 대접전을 벌여 서로간의 군사력을 탕진하면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던 위나라에는 큰 호재였었기에 촉에게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전쟁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유비는 왜 유비는 동오를 치게 되었는가?
표면적인 이유는 위나라의 양양성/번성등의 북벌을 하기 위해 형주성을 비운 틈을 탄 관우의 뒷통수를 동오(오나라)의 대도독(총사령관)인 여몽이 쳐서 관우를 죽이고 형주성을 빼았은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혹자들은 말하곤 한다.
하지만 평민 신분으로 한 나라의 황제가 될 정도로 영민하고 고단수였던 유비가 마치 중2병 걸린 어린아이마냥 케케묵은 감정의 응어리로 수많은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정벌하러 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제갈량, 조운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은 반대를 하고 있었다.)
유비가 동오를 친 이유는 그의 속내를 알수 없어 정확히 파악은 어렵지만 몇몇의 정황 증거로 동오를 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볼수는 있을것 같다.
첫째, 형주라는 땅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촉한은 한황실 부활의 기치로 건국한 나라였기 때문에 위나라에 대한 복수가 제1의 국정목표였다. 따라서 위나라가 있는 중원을 바로 공략할수 있는 형주라는 땅은 촉한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것이다. 그렇기에 형주를 동오에게 빼았긴 촉한의 위나라에 대한 공격 루트는 결국 북쪽의 한중땅에서 베이스 캠프를 차려 험준한 진령산맥을 넘어 공격할수 밖에 없었다. 제갈량의 5차에 이르는 눈물없이 볼수 없는 북벌이 모두 이 루트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격하는 측에서는 진군하기도 어렵고 보급하기가 어려워 상당히 애를 먹는 상황을 연출한다. 따라서 위나라는 험준한 진령산맥을 방패막이 삼아 비교적 적은 군대를 관중평야 있는 장안에 둠으로써 효율적으로 촉한에 대한 수비를 할수 있었다. 만약 형주가 촉한땅이었다면 촉한은 형주 방면과 진령산맥 방향의 2가지 코스로 위나라를 압박할수가 있었기에 위나라 측에서는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전략적인 가치가 있는 땅이 형주였기 때문에 유비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둘째, 손권의 유비에 대한 공작이다.
원래 동오는 여러 유력 호족 세력들의 연합체로 손권은 능구렁이 같은 호족 세력들 틈바구니 속에서 이들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 나라를 다스려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손권 자체가 내부/외부에 대한 정보를 많이 파악하고 상대에 대한 공작을 펴서 손권에게 유리한 활동들을 많이 펼쳤는데, 유비가 촉한에 입촉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비에 대한 공작을 해왔다. 촉지방은 유장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형주의 군벌세력인 유비군이 촉 내부의 법정과 장송과 같은 내부 반란자들을 통해서 촉을 꿀꺽 삼키게 되어 이질적인 형주세력과 촉세력이 혼합되어 언제든지 분열이 될수 있는 갈등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촉의 옛주인이었던 유장은 유비로 부터 촉을 내어주고 어느 순간부터 동오의 손권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는데, 손권은 유장을 동오 서쪽 끝에 보내고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유장을 파촉지방의 자사로 임명해달라고 한다. 물론 유장의 몸은 동오에 있지만 형식적으로 촉을 다스리는 지배관리 형식으로 승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사실 이러한 공작들이 촉내부의 원주민들을 자극 시켰고 가뜩이나 형주세력과 원주민 세력이 화합하지 못하는 갈등 상황에서 손권의 이런 공작으로 말미암아 내부 갈등이 극대화 될것을 유비는 매우 우려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위나라에 대한 복수는 커녕 내부 반역자로 인해 자멸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런 긴장 관계를 유발한 원인을 제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셋째, 황실에 대한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다.
고대의 최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위엄을 보여 자신에게 충성을 할수 있는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동오가 형주를 빼았고,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무력한 황제로 보일수 밖에 없고 가뜩이나 마음속으로 따르지 않은 촉의 원주민 세력들은 유비에 대한 충성 이탈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제갈량이나 조운과 같은 신하된 입장에서는 거국적인 입장에서 동오 공격을 반대하였지만, 유비의 입장에서는 정권유지에 대한 부담으로 자신을 마음속으로 따르지 않은 세력들에게 자신을 따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요약>
1) 촉한의 제1의 국정목표는 한황실을 찬탈한 위나라를 멸하는 것이다.
2) 동오(오나라)가 비록 촉한을 공격하여 형주를 빼았고 관우를 죽였지만, 유비가 단순한 감정으로 동오를 공격하지는 않았을것이다.
3) 유비는 형주라는 땅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샀고, 형주란 땅이 있어야만 다양한 루트로 위나라를 공격할수 있었음을 머리에 두고 있었다.
4) 수많은 능구렁이 틈속에서 자라왔던 손권은 이간질과 같은 공작의 화신이다. 구(舊)촉의 수장인 유장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유비의 점령지인 파촉의 관리자로 임명하여 옛 원주민들을 자극하는 공작을 펼쳐 유비는 매우 성가시게 생각한다.
5) 유비도 황제가 되었기에 마음속으로 따르지 않았던 촉의 원주민들에게 자신이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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