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이비 역사

제갈량이 탄핵한 이엄 & 아들 정조에 의해 복권되지 못한 사도세자 케이스의 교훈은?

아이비리 2021. 6. 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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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탄핵한 이엄 & 아들 정조에 의해 복권되지 못한 사도세자 케이스의 교훈은? 》

1.
유비는 촉한을 차지한 후 형주땅을 지키던 자신의 의형제인 관우의 죽음을 빌미로 손권의 동오를 대대적으로 공격했으나 동오의 입구인 이릉에서 크게 패한후 촉한의 최전선인 백마성에 자기의 유언을 남길 탁고대신 두명을 부르는데 한명은 제갈량이고 한명은 이엄을 부른다.

유비가 제갈량과 이엄을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촉한의 신진세력인 제갈량을 비롯한 형주이주세력과 기존 이엄을 필두로 한 촉한 토박이와의 화합도모 차원이 컸을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죽기전에 역사서에는 아예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오고 이릉전투에서 호위해주었던 "진도"를 이엄에게 붙여준다.

유비의 심복이었던 진도를 이엄에게 붙여준 이유는 이엄이 비록 제갈량에 이은 2인자였으나 체급의 차이가 많이 나는 2인자라 제갈량과 힘의 균형을 맞춰보기 위한 유비의 포석이라 볼수 있다.

하지만 유비의 이런 노력에도 촉한의 정권은 이엄이 손쓸틈도 없이 제갈량을 중심으로 하는 형주세력에게 빠르게 장악이 되었다.


짐작컨대 입법, 사법, 행정의 조직은 제갈량의 사람으로 채워졌을것이고 이러한 연유로 제갈량이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을 진행했을때 진령산맥이란 험지를 넘어야 할때 치중부대의 수송을 이엄을 위시로 한 촉한 토박이 세력이 담당했는데 제갈량 군대가 한창 위나라와 진령산맥 부근에서 대치할때 비가 억수로 와서 군량 수송이 어려우니 퇴각함이 좋겠다고 이엄이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권고를 했었고, 제갈량도 이엄의 권고가 타당하다 싶어 회군을 하였는데 제갈량이 돌아오자 마자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엄이 군량미 수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이엄을 탄핵하기에 이르렀다.

제 아무리 촉한내에서 2인자라 하였을지라도 사법부 조직마저 제갈량에게 장악당해 이엄은 손쓸틈도,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할틈도 없이 평민으로 강등되고 역사서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것은 앞서 유비가 백마성에서 최후를 맞이할때 그의 옆에서 호위를 하였고 유비가 예주목 시절부터 함께 침식하여 의형제급이었던 진도도 이엄의 라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전행적과 성과가 역사서에서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가량의 이엄을 탄핵한 진실과 실체는 지금도 밝혀진바가 없다. 아마도 당시에 많은 촉한 토박이들이 사기 탄핵이다! 바로 잡아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구호와 상소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것은 제갈량은 힘이 있었고, 이엄은 힘이 없었다. 진실과 정의의 출발점은 바로 그 힘의 유무에 있는것이다.


2.
사도세자는 늦둥이를 보게 된 영조의 희망이고 커다란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영조는 무수리의 자식에 선대왕을 독살했다라는 의심으로 정권의 핵심인 노론세력들에게 왕의 자격논란에 시달렸으며 그러다보니 책잡힐일 없이 항상 조심하고 삼가고 성심성의껏 공부하였다고 한다.

왕위 자격이란 콤플렉스에 시달린 영조는 자신보다 자기 아들 사도세자가 보다 훌륭한 왕이 되기를 소망하며 불과 3살의 나이때부터 제왕학 교육을 시작했고 영조 당신이 아들 사도세자를 위한 교과서를 만들만큼 아들에 기대가 너무나도 컸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그런 기대가 부담스러웠고 아버지의 사랑과 따뜻함 대신에 질책과 엄격함에 스스로가 주눅이 들어 정신병을 앓게 되었고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자 노론세력들이 비토를 하게 되었으며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게 만들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의 자리에 오른 이가 정조대왕이었는데, 정조는 왕위에 오른날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일갈을 한다. 이 말만 들으면 사도세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비토한 노론세력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정조의 그런언급은 노론 세력들의 사도세자의 비토는 가슴어 안고 가지고 갈테니 왕의 아버지니깐 복권만을 해달라는 그런 타협의 메세지였다.

하지만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노력에도 사도세자는 정조대왕이 죽을때까지 복권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조도 죽고 당시 사도세자를 직접적으로 비토한 집권세력이 역사속에서 사라진 이후 고종이 즉위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도세자는 "장조"라는 시호를 받고 복권이 되었다.

이렇듯 한번 국가적으로 결정되고 실추된 명예를 되돌리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것이다. 그게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기 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그렇게 찾기는 어려운것이다.


3.
화학에서 반응이 일어나면 반응물은 생성물로 변화한다. 반응이 일어나는 원동력은 생성물의 열역학적 에너지가 반응물의 열역학적 에너지보다 낮기에 가능한것이다.

그런데 반응물과 생성물의 열역학적 에너지 차이가 적으면 어떨까? 그렇다면 생성물에 약간의 에너지를 주입하면 생성물이 반응물로 환원이 될수가 있다. 이를 화학에서는 가역반응(Reversible Reaction)이라 한다.

만약 반응물과 생성물의 열역학적 에너지 차이가 매우 크면 어떨까? 물론 생성물에 엄청난 에너지를 주입하면 이론적으로 생성물이 반응물로 환원이 될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진 물을 양수기를 이용하여 위로 퍼올리는 아주 부자연스럽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쓸데없는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반응을 비가역반응(Irreversible Reaction)이라고 한다.

이런 가역, 비가역 반응은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본다. 되돌릴수 있들과 되돌릴수 있는 일인데 하지만 때로는 어떤일들에 대해서는 되돌릴수 있는일인지? 되돌릴수 있는 일인지? 알수가 없다는게 어떤이게는 축복이 되고 어떤이에게는 불행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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