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광 이야기

<납에서 은 추출하는 신기술, 조선에서 묻히고 일본으로 전래, 임진왜란때 조총으로 돌아왔다>

1. 일본은 은광 개발 덕택에 상업이 비약적 발전

일본 시마네현에 있는 이와미 은광(石見銀山)은 세계적인 은광 유적으로 유명하다.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기록에 따르면 1526년 하카타의 상인 "가미야 히사사다"가 본격적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이 은광을 두고 일본 다이묘들간에 쟁탈전이 벌어 지기도 했다.

결국 1584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갔는데 여기서 생산된 은은 임진왜란 당시 무려 30만 대군을 일으키는 군자금으로 충당되었다. 조총과 실탄제조용 납, 화약등을 대량 구매에도 사용되었다.

한편 이와미 은광의 개발 시기는 일본이 포르투갈을 통해 세계 교역망과 연결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은은 세계 교역의 주요 통화 수단이었기에
16세기 후반부터  포르투갈과 17세기 초  네덜란드와의 교역에도 사용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비약적으로 상업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일본은 17세기에 이르면 이와미 은광의 은 산출량은 연 수십 톤에 달했으며, 일본 내 본격적으로 은본위제도가 확립되었고 조선 및 청나라와의 교역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2. 연은분리법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래

은광에서 깨낸 은광석에는 납이 다량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분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역사상 은광석에서 순수 은을 추출하는 방법은 대단히 고급 기술에 속했다.

당초 은광석을 며칠이고 가열해 남은 재에서 순수 은을 걸러냈는데 노동력이나 시간과 비교하면 은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훗날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이라고 명명된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금속의 녹는점을 이용해 은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은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만들었다.

일단 은광석(은이 포함된 광석)과 납을 섞어 태워 혼합물(함은연)을 만든 뒤 이것을 다시 가열해 녹는점이 낮은 납은 재에 스며들고 순수한 은만 남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은분리법은 당대에 개발된 은 제련법 가운데서는 가장 획기적인 기술 중 하나로서 조선 연산군때 세계 최초(?)로 개발(1502)되었다가 외면되었다.

그이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1533년 8월 가미야 히사사다가 오모리에서 처음 성공하였다.
조선에서 경수(慶寿)와 종단(宗丹)이라는 두 기술자를 초청해서 기술을 습득한 결과였다.

그 결과 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 기술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 은 채취에 크게 공헌하였다

3. 조선은 적폐청산을 위해 연은분리법을 폐기

연산군(1503)은 양인(김감불)과 노비(김검동)가 개발한 연은분리법 시연을 보고  조선 최대의 은광이 있는 함경도 단천에서 연은분리법으로 은을 캐도록 지시한다.

더욱이 호조판서가 ‘채은납세제(採銀納稅制)’,
즉 민간에 은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걷자는 건의를  하자 연산군은 바로 시행하라고 했다.

제대로만 했으면 국가 수입이 크게 증대했겠지만, 실제로는 연산군이 총애하던 후궁(장녹수) 집안이 채굴권도 받고 면세 혜택도 받는 등 국정농단에 악용되었다.

한편 민간 개발자들이 생산했던 막대한 양의 은은 명나라와의 무역에 사용되며 사무역이 크게 증대됐고 상업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데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 시대가 막을 내린다. 신 정부의 첫 번째 목표는 연산군 시대의 적폐청산인데, 그중에서도 은광의 민간 채굴은 반정이 일어난 1506년 9월 즉각 금지되었다.

이듬해 4월에는 연은분리법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왕명이 내려진다

근데 중종 34년(1539) 8월 조정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벌어진다. 유서종이라는 종4품 판관이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연은분리법 기술을 유출했다는 내용이었다.

연은분리법은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고급 기술이었는데, 이를 일본에 유출한 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종 37년(1542)이 은광 개발을 막고 한 세대가량 지나서 조선 조정이 큰 충격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일본 사신이 무려 8만여 냥(3200kg)의 은을 가져와 무역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50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일본 사신들이 조선에 은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제 일본이 오히려 조선에서 개발된 연은분리법으로 은을 대량생산하게 됐고, 조선은 일본에서 은을 들여오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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