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천재들간 불륜 의혹 : 마리 퀴리 and 폴 랑주뱅>
출처 : 페이스북 전집현
1. 불륜 의혹으로 노벨상을 놓칠 뻔
마리 퀴리(1867~1934)는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근데 두번째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당시 그녀는 프랑스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도 선정 취소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녀가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죽은 뒤 남편 제자이자 동료 과학자인 폴 랑주뱅 (1872~1946)과의 불륜 의혹때문이었다.
랑주뱅은 처가와 아내로부터 구박과 폭행을 당하는 등 가정생활이 힘들었고, 마리 퀴리 역시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빠져 있어 서로 위로해 주다 보니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노벨상을 거절하라는 편지를 마리 퀴리에게 주지만, 마리 퀴리는
“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
이라는 말과 함께 시상식에 참석하고 노벨상을 다시 한 번 받게 된다
2. 불륜 의혹 랑주뱅은 프랑스의 최고 두뇌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랑주뱅의 지도교수였는데, 랑주뱅을 "프랑스에서 최고의 물리학자"라며 격찬했고,
아인슈타인도 “만일 내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랑주뱅이 발견했을 것"이라며 치켜세울 정도였다.
3. 끈질긴 마리 퀴리(家)와 랑주뱅가(家)의 인연
1) "랑주뱅"은 마리 퀴리의 첫째 딸 "이렌 졸리오 퀴리"(1897~1956)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를 맡았다.
2) 이렌의 남편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는 1943년 "랑주뱅"이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탈출하는 걸 도왔다. 좌파였던 랑주뱅은 평소 반(反)나치의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 이렌과 프레데릭은 1935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
3) 마리 퀴리의 손녀(엘렌 졸리오)와 랑주뱅의 손자
(미셸 랑주뱅)가 결혼하였다.
#아이비역사 #마리퀴리 #노벨상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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