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포에니 전쟁때 카르타고의 전쟁영웅 한니발은 지중해를 넘어 로마를 공격하면 로마해군에게 격퇴당할게 뻔하여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프랑스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태리 반도에 이르게 되었다.
로마를 공격하기전에 한니발은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를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가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연구하였다. 그것은 페르시아가 대제국이라 하더라도 다민족 국가 연합인 페르시아의 유대가 그렇게 끈끈하지 않기때문에 하나의 페르시아 동맹국가에 힘의 우위를 보여 자연스레 페르시아 동맹의 해체를 유도 하였고 급기야 힘에 우위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편에 서게 되어 페르시아 대제국은 그렇게 마케도니아에 의해 점령당한것이다.
한니발도 삼니움, 갈리아족들과 같은 동맹연합국가인 로마제국에게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에 공략했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앞서 언급한것처럼 한니발은 로마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회하여 알프스 산맥을 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5만이었던 군사중에 절반인 2만5천만 살아남았고, 대동한 코끼리도 수백마리가 죽게되는 병력손실이 있었다.
그러나 질적으로 강력한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사는 알프스 산맥을 넘자 로마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대승을 거두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북 이태리에 살고있었고 로마시민이었던 야만인 갈리아족이 카르타고에 붙어버려 2만5천명이던 군세가 단번에 6만명으로 불어났다.
이렇게 되니 한니발은 로마 동맹시 한두곳만을 철저하게 붕괴시키면 자연스레 로마연합은 해체되고 자신의 편이되어 로마를 평정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로마를 우회하여 남부 이태리인 칸나에를 공략하였다.
이에 로마도 질세라 10만 보병과 6천에 달하는 기병을 파병하였고 전쟁의 중요도가 높기에 원로원 의원 60명과 집정관이 친히 참전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로마군의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칸나에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한니발의 포위전락과 뛰어난 기병전술에 힘입어 십만명의 로마군은 몰살되었고 심지어 집정관과 원로원 의원 60명도 모두 죽었다.
상황이 이쯤되면 한니발의 생각처럼 로마제국의 동맹은 붕과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로마제국의 결속은 더 단단하게만 되어졌고 한니발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2차 포에니 전투가 실패에 이르렀다.
2차 포에니 전쟁을 위해 페르시아-마케도니아 전쟁까지 연구하였던 한니발이 놓친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로마의 시민권이다.
로마는 아무리 피지배국이라 하더라도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와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였으며 피지배국의 안위와 번영을 모토로 삼았기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은 피지배국민들도 로마에 동화가 되었고 심지어는 로마에 수십년간 격렬하게 저항한 삼니움족에서도 로마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힘에 우위에 의한 억압이 아닌 이러한 관용과 포용이 있었기에 로마는 오랜기간 동안 넓은 영토를 거스리며 찬란한 영화를 누릴수 있었던것이다.
관용과 포용이란 덕목이 제국의 운용에만 적용될수 있을까? 소위 사람을 끄는 매력넘치는 사람들도 관용과 포용이란 덕목을 쉽게 발견할수가 있다.
가끔 나보다 어리지만 잘나가는 경영자들이 이런 관용과 포용이란 겸손함을 보여줄때 한없이 부끄럽고 존경함도 표한다. 존경은 나이에 상관이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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