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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이비 역사 113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 인류의 발전을 한마디로 정의를 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의 발견과 인간의 신분상승" 수십만년전 출현한 인류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북경원인으로 부터 인류는 그저 동물의 한무리였었다. 그러던 인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동기는 불의 발견과 무관하지 않는데, 불을 이용하여 인류는 더이상 날고기를 먹지 않고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수있어 커다랗고 강력한 턱뼈는 작고 유연한 턱뼈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뇌의 크기가 좀더 커질수 있게 되었으며 소화물 흡수가 보다 원할해져 뇌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돼 인류는 스스로 생각이라는것을 하기에 이르른다. 그러던 인류는 동굴벽화에서 볼수 있듯이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구별할줄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은 스스로가 자신이 인간이란 ..

토착왜구의 진실

《 토착왜구의 진실 》 왜구의 한자어는 倭寇라고 한다. 여기서 倭(왜)는 왜나라인 일본을 뜻하는데, 일본어의 음독으로는 わ(와)로 읽고 훈독으로는 やまと(야마토)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일본 고대국가인 "야마토" 정권이 "와"라고 불리면서 우리에겐 "왜"라고 전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寇(구)는 "도적"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왜구(倭寇)"라고 하면 왜나라 사람을 얕잡아 보는 의미로 통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왜(倭)의 어원인 야마토 정권은 당시 지금의 전라도 지방에 위치하는 백제와 왕성한 교류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일본 고대어에서 백제(百済)를 의미하는 말은 くだら(쿠다라)라고 하였다. 현 일본어에서도 쿠다라나이(くだらない)라고 하면 "시시하고 쓸모없는"이란 의미가 되는데 이는 백제것이 ..

나혜석 이야기

《 나혜석 이야기 》 직장생활 할때 수원 인계동에 있는 나혜석 거리 근처에 있는 고기집과 술집주변에서 회식을 많이 하였었다. 빽빽한 술집과 고기집 사이에 비교적 넓디넓은 면적의 공터 같은 곳에 나혜석 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회식하고 술 마시기 바빠서 한복 복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나혜석이란 분이 누군지 관심도 없었고 알길이 없었다. 게다가 나혜석이 사람이름인지? 인계동 공터에 있는 나혜석 상이 나혜석인지? 왜 비싼땅에 상업 시설을 더 만들수 있는것을 희생하고 이런 공터에 한복을 입은 여자상을 만들었는지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나에게는 술에 취해 가끔씩 보이는 석상일뿐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찮게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혜석이 사람이름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도 수원 출신에 우리나라..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무엇인가? 》 이공계 출신이다 보니깐 각종 과학 법칙과 현상에 관심이 많았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대학 교양수업 당시 내가 살짝 좋아하라 했었던 깜찍한(?) 여자 동기가 시험에 참석하지 못한 불상사가 있어 교수님에게 꾸중을 들으며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레포트를 써오라고 하면서 E.H. 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그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깜찍했던 그 친구가 읽었기에 나도 그친구와의 동질성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그 친구가 있었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쭉 읽어보다가 너무도 재미가 없었고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는 말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

베트남 관련일을 도모하기전 관련 역사 공부는 필수

《 베트남관련일을 도모하기전 관련 역사 공부는 필수 》 내용을 보니 베트남은 중국의 남부에 위치하여 있어 기원전 111년에 중국 한나라 무제가 침입하여 베트남을 중국에 병합하고 약 1천년이 지난 939년에 베트남 왕조가 복원이 되는가 싶더니 1400년경에 중국 명나라에게 20년간 지배를 받고 다시 베트남왕조로 돌아가는데 1800년대 중반에 프랑스 선교사를 살해한 명분으로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아 1954년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고 제네바 협정에 근거하여 남 베트남은 미군이 지배를 하는등 정확히 계산은 해보진 않았지만 1천년 이상의 외세 지배를 받은 나라가 베트남인것이다. 그런데 재미난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무려 1천년 이상을 3대 강대국 지배를 받았지만 스스로가 3대 강대국들을 몰아냈다는 자부심도 큰 나..

로마가 위대했던 이유

《 로마가 위대했던 이유 》 제2차 포에니 전쟁때 카르타고의 전쟁영웅 한니발은 지중해를 넘어 로마를 공격하면 로마해군에게 격퇴당할게 뻔하여 지금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프랑스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태리 반도에 이르게 되었다. 로마를 공격하기전에 한니발은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를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가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연구하였다. 그것은 페르시아가 대제국이라 하더라도 다민족 국가 연합인 페르시아의 유대가 그렇게 끈끈하지 않기때문에 하나의 페르시아 동맹국가에 힘의 우위를 보여 자연스레 페르시아 동맹의 해체를 유도 하였고 급기야 힘에 우위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편에 서게 되어 페르시아 대제국은 그렇게 마케도니아에 의해 점령당한것이다. 한니발도 삼니움..

나루히토 일본 천황의 연호인 令和(REIWA)에 담긴 일본 이야기

《 나루히토 일본 천황의 연호인 令和(REIWA)에 담긴 일본 이야기 》 일단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자. 일본의 최고의 상징적인 존재는 천황(天皇,텐노)이라고 불리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천황을 천황이라고 부르면, 일본을 높힌다 여겨 굳이 "일왕"이라고 부르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잘못된것이다. 천황은 높임말이 아닌 하나의 고유명사이다. 일전에 언급을 했지만 진시황제를 진왕이라고 하지 않으며, 러시아의 차르를 러시아왕이라 하지 않으며, 나폴레옹 황제를 프랑스왕이라 하지 않고, 흉노족 묵특 선우를 흉노왕이라고 하지 않으며, 선비족 가한을 선비왕이라고 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천황은 일본에서 최고의 존엄을 가진 고유명사일뿐이지 이를 굳이 "일왕"으로 부르면 아직도 일본에 대한 열..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에 대한 오해

《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에 대한 오해 》 어릴적 우리들 기억속에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진정한 사실일까? 몇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1. 의자왕은 "해동의 증자"라는 별칭이 있었는데 "증자"는 공자가 총애하는 제자로 효심이 아주 지극한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3천 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의 왕에게 해동 증자라는 칭호가 과연 어울릴까? 2. 의자왕이라는 글자 자체에 의자왕이 어떤 사람인지 잘 나타나 있다. 의자왕을 한문으로 표기하면 義慈王이 되는데 이를 풀이하면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호색한 왕과 어울리는가? 3. 백제보다 몇십배, 혹은 몇백배 국력과 물자가 많았고 무련 천년이후의 나라인 조선에서도 왕실에 있는 궁녀수가 5백이 넘지 못하였다..

중국 역사속 미녀이야기

《 중국 역사속 미녀이야기 》 중국 역사를 들여다 보면 참으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다. 왕, 충신, 간신, 장군, 자객등등 다채로운 이야기속에서 많은 교훈들이 숨어 있는데 그 속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였던 미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국에는 4대 미녀라고 있는데.. 첫번째가 춘추전국 시대때 월나라의 서시가 있다. 서시는 월나라 구천이 전쟁에서 지고 오왕 부차에게 바친 인물로 월나라의 책사인 범려가 고르고 골라 여러 훈련을 시켰다고 전해진다. 서시의 미모에 대해서는 "침어"라는 말이 회자되는데, 서시가 월나라의 어떤 마을에서 살면서 빨래를 하러 냇가를 갔는데 냇가에 있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서시의 모습을 보고 물 아래로 가라앉아 붙여졌다고 한다. 두번째가 한나라 시절의 왕소군이다. 한나라는 ..

읍참마속이 주는 교훈

《 읍참마속이 주는 교훈 》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립하고, 유비의 아들인 후주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려 오장원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북벌을 진행하였던 제갈량은 촉한으로 넘어오기전 형주땅(지금의 우한)에서 알게된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재주가 뛰어난 마량등 마씨 형제들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마량을 비롯한 마씨 형제들은 제갈량에게 "존형"이라고 부를정도였었는데, 유비-관우-장비와 같은 결속력있는 관계까지는 아니겠지만 제갈량은 마씨 형제들과도 매우 끈끈한 관계임을 보유주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특히 유비가 동오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촉한과 동오의 경계 부근의 백마성에서 숨을 거둘때 탁고대신으로 간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중 하나가 마량의 동생인 마속을 너무 끼고 다니지 말아라였다. 유비의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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