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이비 역사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에 대한 오해

아이비리 2020. 10. 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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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에 대한 오해 》

어릴적 우리들 기억속에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진정한 사실일까?

몇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1. 의자왕은 "해동의 증자"라는 별칭이 있었는데 "증자"는 공자가 총애하는 제자로 효심이 아주 지극한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3천 궁녀를 거느린 호색한의 왕에게 해동 증자라는 칭호가 과연 어울릴까?

2. 의자왕이라는 글자 자체에 의자왕이 어떤 사람인지 잘 나타나 있다. 의자왕을 한문으로 표기하면 義慈王이 되는데 이를 풀이하면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호색한 왕과 어울리는가?

3. 백제보다 몇십배, 혹은 몇백배 국력과 물자가 많았고 무련 천년이후의 나라인 조선에서도 왕실에 있는 궁녀수가 5백이 넘지 못하였다. 그런데 조선보다 그 규모가 훨씬작고 인구수가 적어 싸울 군사수도 수천을 모으기 어려울 시절에 궁녀수가 3천이란 말은 논리상 성립이 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정황증거로 보았을때 의자왕은 망국의 왕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평균이상을 하는 왕이었을것이다.

또한 그의 재임중에는 걸출한 신하인 성충을 중용하여 신라의 성을 40개나 빼앗는등 커다란 활약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당시 최강이었던 당나라와 연합한 나당 연합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의자왕은 왕으로서 나름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했던것이다.

그렇다면 공적도 많고 성품이 좋았던 의자왕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평가가 이리도 박한것일까?

그것은 첫째도 망국의 왕이고, 둘째도 망국의 왕이고, 셌재도 망국의 왕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돌아보면 정치적으로 탄핵을 당하고 구속되어 수감을 당한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봐도 그렇다.

보수 우파의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훌륭한 업적이라고 수십개, 수백개를 나열하지만 많은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그런것이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수천년동안 우리에게 호색한 의자왕이라 점철된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아이들 수장될때 굿을 했다던지, 섹스 비디오가 돌아다닌다는 선전선동에 낙인이 찍히기 마련이다.

의자왕의 평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는 마치 평행이론처럼 무척이나 닮아 있다고 보면 된다.

만약에 의자왕이 당나라 세력과 연합하여 신라를 무너뜨려 백제 세력을 온전히 보전하였으면 그에게 3천궁녀 운운하는 낭설이 퍼졌을까?

늘 강조하지만, 역사는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쓰는 기록이다. 역사를 한문으로 표기를 하면 歷史가 되는데 여기서 史는 가운데 중(中)자에서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듯이 쓰여져 있다. 이 글자로만 봐도 역사는 중립성을 갖기 어렵고 편협성을 가질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를 해야한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공적이 많아도 섹스 테이프가 언급이 되듯이, 아무리 의자왕이 전쟁에서 큰 공헌이 있어도 3천궁녀가 언급이 되듯이 승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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