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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5

유비의 마지막 전투인 이릉전투가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 유비의 마지막 전투인 이릉전투가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 촉한이 동오와 자존심 대결을 겨룬 이릉전투 삼국지 연의나 정사에서도 알다시피 유비는 동도의 대도독인 육손의 대활약으로 이릉전투에서 크게 대패하고 촉한의 최전방인 백제성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게 되었다. 유비가 백마성에서 숨을 거둘때 촉한의 두명의 거두인 제갈량과 이엄을 불러 탁고대신으로 삼아 자신의 사후를 도모하였고 자신의 후계자인 유선에 대한 안위를 당부하였다. 사실 이릉전투를 벌이기전에 촉의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었다. 특히나 승상인 제갈량과 오랜 충신인 조자운의 반대가 심했는데, 유비의 이릉 전투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도 강하여 천하의 제갈량도 유비의 의지를 꺽지 못하였으며 일개 관원이 이릉 전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바로 처형을 ..

읍참마속이 주는 교훈

《 읍참마속이 주는 교훈 》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립하고, 유비의 아들인 후주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려 오장원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북벌을 진행하였던 제갈량은 촉한으로 넘어오기전 형주땅(지금의 우한)에서 알게된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재주가 뛰어난 마량등 마씨 형제들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마량을 비롯한 마씨 형제들은 제갈량에게 "존형"이라고 부를정도였었는데, 유비-관우-장비와 같은 결속력있는 관계까지는 아니겠지만 제갈량은 마씨 형제들과도 매우 끈끈한 관계임을 보유주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특히 유비가 동오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촉한과 동오의 경계 부근의 백마성에서 숨을 거둘때 탁고대신으로 간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중 하나가 마량의 동생인 마속을 너무 끼고 다니지 말아라였다. 유비의 이 ..

제갈량에 대한 오해

《 제갈량에 대한 오해 》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비중을 가진 제갈량.. 각종 도술에 그가 내세운 계책은 모두다 맞아 떨어져 모든 일들이 마치 부처님 손아귀에 놀듯이 몇수를 헤아려 보았던 그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1.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한 삼고초려의 오해 40대말의 별볼일 없었던 유비가 유표가 지배를 하고 있었던 형주에 쫓겨와 있을때 서서의 조언으로 형주 근방에 학문을 닦고 있던 20대에 불과한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얻었다고 하는데, 유비가 삼고초려로 얻은 제갈량이 엄청난 실력이 있어서 유비가 2번 거절당하고 3번이나 찾아올 정도의 인물이었을까? 제갈량의 개인 능력치는 매우 뛰어 났을것이나, 제갈량의 능력치보다 주의깊게 보아야 할것이 그의 출신 가문이다...

촉한 유비가 실패한 이유와 배울점은 무엇인가?

《 촉한 유비가 실패한 이유와 배울점은 무엇인가? 》 삼국지 연의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유비.. 소설속에서는 제갈량을 만나 천하무적이 되어 중국 전역을 통일할것 같았지만 가장 먼저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 이유는, 절대적인 국력의 열세이다. 국가대 국가의 싸움은 지리한 소모전의 연속이다. 따라서 전쟁을 하여 소모된 물자를 얼마나 신속하게 보급해주냐가 긴 싸움에서의 핵심인데 촉한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만약 촉한이 농서지방과 현재 섬서성 시안 부근의 장안땅을 차지했더라면 한고조 유방도 이곳의 풍부한 생산력으로 항우를 이겼듯이 유비도 한번 겨뤄볼만 했을것이다. 게다가 북방민족으로 부터 현대판 탱크라 불리워도 손색없을 양질의 준마도 획득이 가능하였을것이다. 없는 자원에 머나먼 원정길로 위나라를 공략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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