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을 움직이는 자본 》
서양의 고대~근대까지의 미술 발전사를 보면..
어떠한 계층에서 미술에 자본을 대었고 어떤 계층이 주된 소비층이었냐에 따라서 미술의 특성이 달라졌다.
다시말하면 시대별로 어느 나라에 돈이 몰렸는지, 그 돈이 어느 계층에 집중되었는지에 따라 미술의 사조가 크게 달라지는것 같다.
서양의 미술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로 부터 출발해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기를 맞이하였고 그 이후에는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그리고 신고전주의를 지나 낭만파, 사실주의, 인상파의 계보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이 융성하였고 로마는 팍스 로마라 불리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예술의 중심은 그곳일수 밖에 없다.
※ 참고로 그리스, 로마시절의 예술을 보면 이미 예술적 스킬은 그당시 다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는 고대와 현대가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러다 중세 암흑기때는 교회의 힘이 막강하여 예술이라기 보다는 이콘화라고 하여 성경에 있는 내용을 계몽적 차원으로 그린 성화였었고 그러다보니 등장인물의 감정이 절제되어 그림이 무척 건조하고 특색이 없으며 그리스, 로마시절에 강조되었던 조화와 균형미 마저 사라졌다.
본격적인 미술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은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면서이다. 그 당시에는 동방의 실크, 후추, 차와 같은 기호물품들이 서양으로 유입이 되고 있었는데 이때 동서양의 중개무역으로 커다란 돈을 번 집단들이 이태리 반도에서 속속 등장하였고 제일 대표적인 가문이 메디치 가문이었다.
르네상스 미술은 이태리 반도에서 활약하던 메디치 가문과 같은 자본가의 후원에 의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를 기점으로 직업적인 화가라는 관념이 생겼고 그 화가가 그린 미술이 과거와는 달리 예술이라고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증거로 르네상스 이전의 작품들은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들은 작가가 누군지 알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버리자 동방의 문물들이 서방으로의 유입이 차단되어버리자 이태리 중개무역도 사그라지고 결국 찬란했던 르네상스 시기도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은 동양과의 물물 교류를 희망하고 있었던 바, 결국 그러한 강렬한 열정으로 대항해의 시대가 열렸고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거쳐 인도, 중국까지 가게되는 무역로가 확보가 되면서 많은 돈들이 북유럽에 몰리게 되면서 이태리 르네상스에 영향을 받은 북유럽식 르네상스가 다시 한번 펼쳐지게 된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절대왕정 시기가 있게 되고 막강한 왕실의 후원을 받은 바로크 양식의 미술 사조가 크게 유행하였고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귀족의 힘이 강해지니 귀족의 사치스러운 문화를 대변하는 로코코 양식이 등장하게된다.
이후 브루조아와 평민들로 인한 프랑스대혁명이란 민중혁명이 일어났고 프랑스혁명의 계승자라 칭해졌던 나폴레옹 황제가 등극하면서 화려했던 로코코 양식은 사라지고 혁명의 정당성과 혁명의 수호자인 황제를 미화하기 위한 신고전주의 미술양식으로 변했다가 혁명을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많은 사람들은 극도의 허무주의, 현실도피를 꿈꾸는 낭만주의 사조의 그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듯 예술이란 이를 후원했던 경제, 정치적 백그라운드가 어디에 있었는지에 따라 화풍이 변화하게 되는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나 자본을 애써 부정하려고 해도 예술과 문화는 정치나 자본에 크게 의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들의 산물이자, 부산물이 예술과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아이비생각 #르네상스 #이콘화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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